[뉴스비전e 박준상 기자] 미국이 2년여만에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하면서, 이로 인해 미칠 영향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는 현지시간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망 중립성 원칙 폐기'를 찬성 3, 반대 2로 통과시켰다.

5명으로 구성된 FCC 위원 가운데 버라이즌 출신의 아짓 파이(Ajit Pai)위원장을 포함한 공화당 추천인사 3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예전 수준으로 완화시켜서 통신업체들이 5G 등 새로운 망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컴캐스트, 버라이즌, AT&T 등 미국 통신사업자들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콘텐츠 공급자(CP)들은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위원들 / fcc.gov >

◆ '망중립성 원칙'이란?

'망 중립성'은 누구나 인터넷망 이용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고 공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 즉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통신사업자가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데이터 트래픽을 그 내용이나 유형,기기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ISP는 콘텐츠사업자(CP) 등 이용자가 송 · 수신하는 트래픽을 평등하게 취급해야 하며, 일부에 대해 봉쇄 · 지연 · 속도제한 · 우선권부여 등 차별적 대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다.

쉽게 말하면 한달에 100 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업자와 50 GB 사업자를 모두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인터넷망 자체가 공공재로 자리 잡으면서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ISP 입장에선 데이터 트래픽 양에 따라 비용을 청구하거나 우량고객에게는 다른 베네핏을 줄 수 있어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이 망 중립성 문제는 최근 스마트폰,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한 대규모 데이터를 이용하는 인터넷 환경이 대중화 · 일반화되면서 논란이 가중되어 왔다.

< 망 중립성(Net Neutrality) / broadband4europe >

◆ ISP에게는 '호재', CP에게는 '부담'

미국의 망 중립성 원칙은 인터넷서비스제공을 전기 · 수도 같은 공공서비스 사업자로 분류하고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를 기간통신사업자로 간주해, 특정 콘텐츠 사업자나 이용자를 차별하거나 차단하지 못하게 했다. 이는 오바마 정부가 지난 2015년 제정했다.

우량 고객이라고 더 빠른 속도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했다.

그러자 미국의 거대 통신업체들은 "이는 수익기반을 흔드는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해 왔다.

망중립성 폐기는 통신업체들에겐 당연히 호재다.

이젠 특정 사업자에겐 인터넷 트래픽을 빠르게 전송해 주고 그 대가를 받을 수도 있고, 제휴를 통해 소비자에겐 요금을 받지않고 공짜로 제공하는 이른바 '제로레이팅'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익성도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거대 통신사들은 통신서비스사업자에서 다시 정보서비스 사업자로 분류돼 연방통신위의 사전규제 대상에서도 빠지게 된다.

하지만 콘텐츠 사업자들은 부담일 수 밖에 없다. 통신사들에 지불하는 비용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상품 개발에도 제약조건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페이스북과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사업자들과 시민단체들은 미국 전역에서 폐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민주당 등과 함께 '폐기 무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 망 중립성 개념정의 · 논의 시작은 미국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폐기된 '망 중립성'에 대한 개념과 필요성을 제일 먼저 꺼낸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로스쿨 팀 우(Tim Wu)교수는 지난 2003년 "공공성을 가진 네트워크 서비스 사업자는 모든 컨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사용자를 차별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요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원칙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인터넷의 발상지가 미국인 만큼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통신사업자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광활하게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따라서 중앙정부 주도로 통신네트워크를 갖출 수가 없다.

인터넷이라는 개념도 원래 미국 정부가 전쟁으로 인해 민간 통신네트워크가 두절됐을 때를 대비해 군용 네트워크를 갖추기 위해 만들어 졌다.

케이블TV를 개발하게 된 이유도, 지상파 방송의 전파를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송수신 타워를 세워 전국민에게 제공할 수 없어서 전화선을 이용한 방송 송출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미국의 초고속 통신 도입이 유럽이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늦어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통신업체들 입장에선 "그 넓은 면적을 커버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였는데, 네트워크를 공공재처럼 사용하라는 건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기껏 고생해서 이제 수확을 거두려는 데 정부가 나서서 많은 수익을 취하지 말라고 훼방을 놓는다고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은 전세계적으로 공공재로서 인식되어 지고 있는 지금, 이번 미국 FCC의 결정은 합리적이라고 말하기엔 조금은 무리가 있다.

< 망 중립성 / TechCrunch >

◆ 유럽은 망 중립성 엄격히 규정...미국 폐기 결정 영향 '미미'

국내 통신업계에선 이번 미국FCC의 결정으로 인해 망 중립성 규제가 완화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의 망 중립성 폐기 결정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전망이다.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지난 12일 ‘망중립성 정책 동향과 주요 이슈’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미국 연방통신위 결정이 우리나라 통신경쟁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들은 기간통신사업자로 분류돼 망중립성 원칙 준수가 의무화돼 있다. 지난 2011년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2013년 한번 문제점을 보완해 현재까지 적용하고 있다.

또한 국회 관련 입법안도 미국과는 반대로 오히려 망중립성 원칙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유럽연합은 2014년 통신개혁 법안 중 망 중립성 원칙을 포함시켰으나 업계 반발과 국가별 이해관계 등이 맞물리면서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유럽 중 법 규정으로 망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나라는 네델란드와 슬로베니아 정도이다.

현재 유럽연합은 회원국 법령에 우선해 적용되는 규정인 '레큘레이션'을 통해 망 중립성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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